옛날 어르신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호환, 마마,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호환은 호랑이, 전쟁은 말 그대로 전쟁인데, 도대체 '마마'가 무엇이길래 호랑이만큼 무서워했을까요?
바로 '천연두(Smallpox)'입니다. 얼굴에 흉측한 곰보 자국을 남기고, 걸리면 3명 중 1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죽음의 신. 20세기 들어서만 무려 3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이 끔찍한 바이러스는 현재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류가 과학(백신)이라는 무기를 들고 싸워 완벽하게 박멸(Eradication)시킨 유일한 감염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인류 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로 기록된 천연두와의 전쟁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1. 죽음의 신, 혹은 곰보가 되는 저주
천연두 바이러스(Variola virus)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치명적인 적이었습니다. 이집트 미라(람세스 5세)에서도 천연두 흔적이 발견될 정도니까요. 이 바이러스는 침방울을 통해 전파되는데, 감염되면 고열과 함께 온몸에 고름이 찬 물집(농포)이 빽빽하게 뒤덮입니다.
운 좋게 살아남더라도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딱지가 떨어진 자리에 깊게 파인 흉터, 즉 '곰보(Pockmark)' 자국이 평생 얼굴에 남았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가 각막을 공격해 실명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조선 시대에 맹인이 많았던 가장 큰 원인도 바로 천연두였습니다. 아즈텍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것도 스페인의 총칼이 아닌, 그들이 묻혀 온 천연두 바이러스였다는 것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2. 소 젖 짜는 소녀가 준 힌트: 최초의 백신
이 공포의 질병을 멈춘 건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였습니다. 1796년, 그는 아주 흥미로운 속설을 듣게 됩니다. "소 젖을 짜다가 우두(Cowpox, 소의 천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안 걸린다"는 것이었죠. 우두는 사람에게는 아주 가볍게 지나가는 병이었습니다.
제너는 과감한 실험을 감행합니다. 우두에 걸린 소 젖 짜는 소녀의 손에서 고름을 채취해, 정원사의 아들인 8살 소년에게 주입했습니다. 소년은 며칠 앓고는 금방 나았습니다. 그 후, 제너는 소년에게 진짜 천연두 바이러스를 주입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백신(Vaccine)'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백신이라는 단어 자체가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Vacca'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3. 1980년, "천연두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제너의 발견 이후에도 천연두는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혔습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1967년, 역사상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바로 '천연두 박멸 작전'입니다.
전 세계 의료진이 오지와 정글을 누비며 환자를 찾아내 격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백신을 놓는 '포위 접종(Ring Vaccination)' 전략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7년 소말리아의 한 청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자연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3년 뒤인 1980년 5월, WHO는 공식적으로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박멸되었다(Eradicated)"라고 선언합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거둔 최초이자 유일한, 그리고 완벽한 승리(KO승)였습니다.

지금 천연두 바이러스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미국과 러시아의 특수 실험실 두 곳에 연구 목적으로 냉동 보관되어 있을 뿐입니다. (혹시 모를 생물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서죠). 천연두의 역사는 과학과 인류의 협력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입니다.
천연두가 사라진 지금, 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덜 치명적인 사촌이 최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바로 '원숭이두창(Mpox)'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천연두의 후예라 불리는 '142. 원숭이두창(Mpox): 천연두의 사촌이 돌아왔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