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바이러스가 입고 있는 옷(캡시드, 엔벨로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단순히 옷만 잘 차려입었다고 해서 우리 몸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려면 현관문을 열어야 하듯, 바이러스도 세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죠.
바이러스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뿔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온 돌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뉴스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그 이름, 바로 '스파이크 단백질(Spike Protein)'입니다. 오늘은 바이러스가 어떻게 이 돌기를 이용해 굳게 닫힌 세포의 문을 따고 침투하는지, 그 정교한 '열쇠와 자물쇠'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정교한 도킹 시스템: 열쇠와 자물쇠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왔다고 해서 아무 세포나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이러스는 아주 까다로운 손님이라서,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세포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 비밀이 바로 스파이크 단백질에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표면에 붙어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은 일종의 '열쇠'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의 세포 표면에는 외부 물질을 감지하거나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용체(Receptor)'라는 '자물쇠'가 무수히 많이 달려 있죠. 바이러스가 세포에 접근해서 자신의 스파이크(열쇠)를 세포의 수용체(자물쇠)에 들이댔을 때, 그 모양이 딱 맞아떨어지면 "철컥!" 하고 도킹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 결합이 일어나는 순간, 세포의 문이 열리며 감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 타겟이 정해져 있다: 조직 특이성(Tropism)
이 '열쇠와 자물쇠' 원리 때문에 바이러스마다 감염시키는 신체 부위가 다릅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 '조직 특이성(Tropism)'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의 열쇠는 우리 호흡기 세포에 있는 자물쇠에만 맞습니다. 그래서 독감에 걸리면 기침이나 콧물이 나는 것이죠. 반면 노로바이러스의 열쇠는 장(소화기) 세포의 자물쇠에 딱 맞습니다. 그래서 구토와 설사를 유발합니다. 아무리 독감 바이러스를 삼킨다고 해도 위장 세포에는 맞는 자물쇠가 없기 때문에 배탈이 나지는 않습니다. 바이러스는 철저하게 자기 열쇠에 맞는 문만 골라서 따는 전문 털이범인 셈입니다.
3. 변신의 귀재: 변이(Mutation)와 백신
문제는 이 스파이크 단백질이 자꾸 모양을 바꾼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변이(Mutation)'라고 부릅니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항체)는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모양을 기억했다가, 다음에 똑같은 녀석이 오면 달라붙어서 문을 못 열게 막습니다. 이것이 백신의 원리죠. 그런데 바이러스가 스파이크의 모양을 살짝 바꿔서 성형수술을 하고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요? 기존의 항체는 "어? 내가 알던 애가 아닌데?" 하고 놓치게 되고, 바뀐 열쇠로 또다시 세포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오미크론이니 델타니 하는 변이 바이러스들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 열쇠의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우리의 방어막을 뚫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은 이 스파이크 단백질을 둘러싼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이러스는 열쇠를 갈고닦아 문을 따려 하고, 우리는 자물쇠를 감추거나 열쇠를 망가뜨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죠.
자, 이제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고(구조), 어떻게 침투하는지(스파이크)까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 정교하고도 악랄한 존재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처음 생겨난 걸까요? 다음 글에서는 과학자들조차 의견이 분분한 미스터리, '006. 바이러스의 기원설 3가지'에 대해 흥미진진한 가설들을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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