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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ology 101: 바이러스학 개론 (The Basics)/1-1. 바이러스의 정체

바이러스(Virus)와 비리온(Virion), 도대체 뭐가 다를까?

by V-Analyst 2025. 12. 17.

바이러스에 관련된 책이나 논문을 읽다 보면 '비리온(Virion)'이라는 낯선 단어가 툭 튀어나옵니다. 오타인가 싶어서 다시 봐도 분명히 '비리온'이라고 적혀 있죠. 바이러스면 바이러스지, 비리온은 또 뭘까요? 혹시 바이러스의 사촌 쯤 되는 걸까요?

사실 이 두 단어는 같은 존재를 가리키지만, '상태'에 따라 구분해서 부르는 과학적인 용어입니다. 우리가 ''을 상황에 따라 '얼음'이나 '수증기'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은 알쏭달쏭한 이 두 용어의 차이를 통해, 바이러스가 가진 '이중적인 모습'을 확실하게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비리온(Virion): 완벽하게 포장된 '택배 상자'

먼저 '비리온(Virion)'은 세포 에 있을 때의 바이러스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 감염이 일어나기 전, 공기 중에 떠다니거나 문손잡이에 묻어 있는 상태의 '바이러스 입자 그 자체'를 뜻하죠.

비리온은 아주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소중한 유전 물질(설계도)이 단백질 껍질(캡시드)에 안전하게 포장되어 있고, 종에 따라 겉옷(엔벨로프)까지 챙겨 입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때는 생명 활동이 전혀 없습니다. 숨도 안 쉬고 움직이지도 않죠. 비유하자면 비리온은 '씨앗'과 같습니다. 싹을 틔울 준비는 완벽하게 되어 있지만, 아직 땅(세포)을 만나지 못해 잠들어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비리온입니다.

 

완벽하게 포장된 입자, 비리온
완벽하게 포장된 입자, 비리온

 

2. 바이러스(Virus): 활동을 시작한 '프로그램'

반면 '바이러스(Virus)'는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세포 에 들어와서 '활동 중인 상태'를 강조할 때 주로 쓰입니다.

비리온(씨앗)이 세포()에 닿아 안으로 들어오면, 껍질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유전 물질을 꺼내놓습니다. 이때부터는 눈에 보이는 입자 형태는 사라지고, 세포를 조종하는 '감염 현상' 그 자체가 됩니다. 비유하자면 비리온이 'USB 메모리'라면, 바이러스는 그 USB가 컴퓨터에 꽂혀서 실행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입니다. USB(비리온)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지만, 실행 중인 프로그램(바이러스)은 모니터 속의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3. 왜 굳이 구분해서 부를까?

"그냥 다 바이러스라고 부르면 안 되나요?"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그냥 '바이러스'라고 통칭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연구의 정확성을 위해 이 둘을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이 환자의 혈액 1mL에 바이러스가 몇 개 있나?"라고 물을 때는 개수를 셀 수 있는 물리적 실체인 '비리온'의 숫자를 세는 것이 정확합니다. 반면, "이 병의 원인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는 병을 일으키는 성질이나 유전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므로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죠. , 비리온'운반체'로서의 물리적 입자를, 바이러스'감염원'으로서의 생물학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USB(비리온)와 프로그램(바이러스)의 차이
USB(비리온)와 프로그램(바이러스)의 차이

 

정리하자면, 우리 몸 밖에서 둥둥 떠다니는 감염성 입자는 '비리온'이고, 우리 몸 안에 침투해서 난장을 피우는 녀석은 '바이러스'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놈이 그놈(?)이니,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옷을 입고 있을 때와 벗고 있을 때를 구분해서 부르는구나!"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 이제 바이러스의 정의부터 구조, 기원, 그리고 이름의 뉘앙스까지 기초를 탄탄히 다졌습니다. 그런데 이 수만 가지 바이러스들의 이름은 도대체 누가 짓는 걸까요? 코로나19는 왜 COVID-19이고, 인플루엔자는 왜 H1N1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복잡해 보이는 '008. 바이러스 명명법: 이름은 누가, 어떻게 짓나?'에 대해 아주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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