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물을 분류할 때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으로 나눕니다. 그래야 이 동물이 새끼를 낳는지 알을 낳는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수만 가지가 넘는 바이러스들은 어떻게 분류할까요? 단순히 "기침 나는 바이러스", "배 아픈 바이러스"로 나누기엔 그 종류가 너무나도 방대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들에게도 체계적인 '족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름 짓는 곳이라고 소개했던 ICTV(국제 바이러스 분류 위원회)가 바로 이 족보를 관리하는 종가댁입니다. 오늘은 암호문처럼 보이는 바이러스의 족보를 아주 쉽게 읽는 법을 알아보겠습니다.
1. 첫 번째 기준: DNA냐, RNA냐? (유전 물질의 종류)
도서관에 가면 책들이 '역사', '과학', '문학'으로 크게 나뉘어 있죠? 바이러스 분류의 가장 큰 대분류는 바로 '유전 물질'입니다. 바이러스가 자신의 설계도로 DNA를 쓰는지, RNA를 쓰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립니다.
DNA 바이러스는 유전 정보가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돌연변이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 천연두, 헤르페스). 반면 RNA 바이러스는 구조가 불안정해서 복제할 때마다 에러가 나기 쉽고, 이 때문에 돌연변이가 밥 먹듯이 일어납니다. (예: 코로나19, 독감, 에이즈). 과학자들은 이 유전 물질의 종류와 가닥수(외가닥인지 쌍가닥인지)를 가장 먼저 따져서 바이러스를 분류합니다.

2. 계급의 발견: '과(Family)'를 보면 성격이 보인다
생물 분류 단계인 '계-문-강-목-과-속-종'을 바이러스에도 적용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단계가 바로 '과(Family)'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성씨(Last Name)'에 해당합니다.
바이러스의 '과' 이름은 항상 '-viridae(비리데)'라는 접미사로 끝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가문은 '코로나비리데(Coronaviridae)'입니다. 이 가문에 속한 바이러스들은 모두 왕관(Corona) 모양의 돌기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오르토믹소비리데(Orthomyxoviridae)' 가문에 속합니다. 우리가 뉴스나 논문에서 "~비리데"라는 단어를 보면 "아, 이게 이 바이러스의 가문 이름이구나!" 하고 이해하면 됩니다. 같은 가문에 속하면 생김새와 침투 방식이 아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3. 볼티모어 분류법: 복제 방식에 따른 7가지 그룹
ICTV의 분류법이 공식적인 '족보'라면, 현장에서 연구자들이 더 유용하게 쓰는 실전 분류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볼티모어가 제안한 '볼티모어 분류법(Baltimore Classification)'입니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어떤 방식으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가?'를 기준으로 바이러스를 Group I부터 Group VII까지 7개로 나눈 것입니다. 예를 들어, Group IV는 '+가닥 RNA'를 가진 바이러스들로, 세포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단백질을 찍어낼 수 있어 감염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코로나19가 여기에 속합니다). 반면 Group VI는 RNA를 DNA로 바꾸는 역전사 과정을 거치는 독특한 녀석들입니다. (HIV가 대표적이죠). 이 분류법을 알면 "이 바이러스는 약을 어디에 써야 듣겠구나" 하는 공략법이 보입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합니다. 바이러스의 유전 물질(DNA/RNA)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복제하는지를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죠. 이렇게 분류를 해두면, 새로운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때 "아, 이 녀석은 코로나 가문의 사촌이구나, 그럼 백신도 비슷하게 만들면 되겠네?" 하고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바이러스가 '매우 작다'고만 배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균보다도 더 큰, 상식을 파괴하는 거대한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이죠. 다음 글에서는 바이러스학 101 파트의 마지막 주제, '010. 거대 바이러스(Mimivirus)의 발견과 의미'에 대해 다루며 1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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