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바이러스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서 있는 기묘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은 도대체 얼마나 작길래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거대한 우리 몸을 아프게 만드는 걸까요?
"작다"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바이러스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작음'의 단위를 훨씬 뛰어넘는 미시의 세계거든요. 바늘 끝에 수백만 마리가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시나요? 오늘은 이 보이지 않는 암살자들의 실제 크기를 우리 몸의 세포, 그리고 세균(박테리아)과 비교하여 체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마이크로미터(μm)와 나노미터(nm)의 세계
먼저 단위부터 정리해 볼까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동물 세포'의 크기는 보통 10~100마이크로미터(μm) 정도입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수준이죠. 이 정도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봤을 때 꽤 거대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차원이 다릅니다. 바이러스의 크기는 마이크로미터보다 1,000배 더 작은 나노미터(nm) 단위를 사용합니다. 보통 바이러스의 크기는 20~300nm 정도인데요, 이는 우리 몸 세포 크기의 약 100분의 1에서 1,0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크기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만약 우리 몸의 세포가 잠실 야구장만 하다고 가정한다면, 바이러스는 그 야구장 안에 떨어져 있는 야구공 한 개 정도의 크기입니다. 이렇게 작은 크기 덕분에 바이러스는 세포의 감시망을 피해 몰래 침투할 수 있는 것이죠.

2. 세균(박테리아)과 바이러스, 체급이 다르다
많은 분이 세균(박테리아)과 바이러스를 혼동하곤 합니다. 둘 다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라는 점은 같지만, 크기만 놓고 보면 어른과 개미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대장균 같은 일반적인 세균(Bacteria)은 길이가 약 1~3μm 정도입니다. 바이러스보다는 훨씬 크죠.
그래서 세균은 학교 과학실에 있는 광학 현미경으로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다릅니다. 바이러스는 광학 현미경으로는 절대 볼 수 없습니다. 가시광선의 파장보다도 작기 때문이죠. 그래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를 관찰하기 위해 빛 대신 전자를 쏘는 특수 장비인 전자 현미경(Electron Microscope)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울퉁불퉁하고 회색빛이 도는 바이러스 사진들은 모두 이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3. 바이러스라고 다 같은 크기는 아니다
물론 바이러스들 사이에서도 키 차이는 존재합니다.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소아마비 바이러스(Poliovirus)는 지름이 약 30nm에 불과해, 정말 단순한 유전 물질 덩어리에 가깝습니다. 반면, 과거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던 천연두 바이러스(Variola virus)는 약 300nm로 바이러스치고는 꽤 덩치가 큰 편입니다.
최근에는 과학계를 놀라게 한 발견도 있었습니다. 바로 미미바이러스(Mimivirus)와 같은 거대 바이러스(Giant Virus)의 등장인데요. 이들은 크기가 400~800nm에 달해, 웬만한 작은 세균보다도 큽니다. "바이러스는 무조건 작다"라는 기존의 상식을 깨뜨린 녀석들이죠. 하지만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세균의 틈새조차 비집고 들어갈 만큼 극도로 작습니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나노미터 단위의 극미세 세계에 존재합니다. 이렇게 작은 크기는 그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먼지보다도 작아서 마스크의 틈새를 파고들기도 하고, 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을 누빌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작다고 얕잡아 봐선 안 됩니다. 그 작은 껍질 속에는 생명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설계도(유전 정보)가 아주 알차게 들어차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작은 껍질, 즉 바이러스가 입고 있는 외투인 '캡시드(Capsid)'와 그 구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바이러스가 어떻게 그 소중한 설계도를 보호하고 있는지, 그 정교한 건축술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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