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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ology 101: 바이러스학 개론 (The Basics)/1-2. 침투와 복제

"별거 아니네" 하고 넘겼다간 큰일… 임산부에게만 '악마'가 되는 바이러스

by V-Analyst 2025. 12. 21.

홍역이나 볼거리는 걸리면 일단 환자 본인이 엄청나게 아픕니다. 열이 펄펄 끓고 얼굴이 붓죠. 그런데 이들과 형제 취급을 받는(MMR 백신의 'R') '풍진(Rubella)'은 조금 다릅니다.

아이들이 풍진에 걸리면 열도 별로 안 나고, 발진도 며칠 만에 쓱 사라집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홍역은 홍역인데 3일 만에 낫네?"라며 '3일 홍역(3-day Measles)'이라고 가볍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무서운 이유는 환자 본인을 괴롭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뱃속의 태아를 노리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겉보기엔 순한 양 같지만, 임산부에게만큼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안겨주는 두 얼굴의 바이러스, 풍진에 대해 알아봅니다.

 

 

 

1. 스쳐 지나가는 바람? '3일 천하'로 끝나는 증상

풍진(Rubella)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증상이 꽤 경미합니다. 미열이 나고 귀 뒤쪽의 림프절이 조금 붓더니, 연분홍색의 발진이 얼굴에서 시작해 몸통으로 퍼집니다. 하지만 진짜(Red) 홍역처럼 색이 진하지도 않고, 서로 뭉치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3일 정도 지나면 발진이 사라지고 열도 내립니다. 심지어 성인의 경우 감염되어도 증상이 아예 없는 '무증상 감염'이 꽤 많습니다. "? 나 풍진이었어?" 하고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흔하죠. 바로 이 점이 풍진을 더 위험하게 만듭니다. 자신이 감염된 줄도 모르는 사람이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다가, 면역력이 없는 임산부와 마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증상 뒤에 숨겨진 위험
가벼운 증상 뒤에 숨겨진 위험

 

2. 태반을 뚫는 침입자: 선천성 풍진 증후군(CRS)

풍진이 악마로 돌변하는 순간은 바로 임신 초기(1~3개월)의 임산부를 만났을 때입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태반이라는 강력한 방어막을 뚫지 못하지만, 풍진 바이러스는 이 태반(Placenta) 통과하여 태아에게 직접 침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바이러스 중 하나입니다.

한창 눈과 귀, 심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임신 초기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세포 분열을 방해하여 심각한 기형을 유발합니다. 이것을 '선천성 풍진 증후군(CRS)'이라고 합니다. 아기는 백내장()으로 앞을 못 보거나, 난청()으로 소리를 못 듣거나, 심장 기형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 풍진이 대유행했을 때, 무려 2만 명의 아기가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국가적 비극이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3. 예방접종은 '남을 위한 배려'입니다

그렇다면 임신 중에 백신을 맞으면 되지 않을까요? 안타깝게도 불가능합니다. MMR 백신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약하게 만든 '생백신(Live Vaccine)'이라서, 임신 중에 맞으면 오히려 태아에게 위험할 수 있어 접종이 금기시됩니다.

그래서 풍진 예방은 '임신 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임기 여성은 반드시 항체 검사를 하고, 항체가 없다면 임신 계획 최소 1개월 전에 백신을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집단 면역'입니다. 임산부 주변의 남편,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백신을 맞아야 바이러스가 발붙일 곳이 없어져 임산부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맞는 풍진 주사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 이웃의 소중한 아기를 지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방패'인 셈입니다.

임산부를 지키는 집단 면역의 방패
임산부를 지키는 집단 면역의 방패

 

다행히 우리나라는 MMR 예방접종률이 매우 높아 풍진이 거의 퇴치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해외여행 중 감염되거나, 백신을 거부하는 일부 집단에서 간헐적으로 유행할 수 있으니 방심은 금물입니다. 풍진은 현대 의학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비극이니까요.

, 이제 MMR 삼총사(홍역, 볼거리, 풍진)에 대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다음으로 만날 녀석은 어릴 적 한 번쯤 겪어봤을, 혹은 나이 들어 엄청난 통증으로 돌아오는 끈질긴 녀석입니다. 바로 수두대상포진입니다. "한 번 들어오면 절대 나가지 않고 몸속에 숨어 산다"는 이 소름 돋는 바이러스의 생존 전략, 다음 글 '131. 수두와 대상포진(VZV): 내 몸에 숨어있는 적'에서 밝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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