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에 결석한 친구 집에 병문안을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나요? 친구의 얼굴이 마치 사탕을 한가득 문 다람쥐처럼, 혹은 네모난 식빵처럼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흔히 이 병을 '볼거리'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얼굴이 붓는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볼거리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훨씬 집요하고 고통스럽습니다. 밥을 먹는 즐거움을 빼앗아가고, 심하면 남성에게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기기도 하니까요. 오늘은 의학 용어로 '유행성 이하선염'이라 불리는 이 바이러스가 왜 하필 우리 볼을 공격하는지, 그 부어오른 볼 속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봅니다.
1. 바이러스의 타깃: 침을 만드는 공장 '이하선'
볼거리에 걸리면 왜 귀밑과 볼이 빵빵하게 부어오르는 걸까요? 그건 바이러스가 우리 몸의 '침샘'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입 주변에는 침을 만드는 공장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중 귀(Ear) 바로 아래(Hypo-)에 있는 가장 큰 침샘을 '이하선(Parotid gland)'이라고 합니다. 볼거리 바이러스는 호흡기로 들어와 혈액을 타고 돌다가, 이 이하선을 발견하면 "여기가 내 집이다!" 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감염된 이하선은 염증으로 인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데, 이 때문에 귀밑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사라지고 얼굴이 사각형이나 호빵맨처럼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레몬만 봐도 아프다? '신 음식'의 공포
볼거리의 가장 고통스러운 특징은 '씹고 삼키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귤이나 레몬처럼 신 음식을 먹을 때 통증은 극에 달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신 음식을 먹거나 생각하면 우리 뇌는 "소화를 시켜야 해!"라며 침샘에 "침을 더 많이 만들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안 그래도 염증 때문에 퉁퉁 부어 터질 것 같은 공장(이하선)에 "풀가동하라"는 주문이 들어오니, 압력이 높아지면서 극심한 통증(방사통)이 느껴지는 것이죠. 그래서 의사들은 볼거리 환자들에게 죽이나 미음처럼 씹지 않아도 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권합니다.
3. 얼굴만 붓는 게 아니다: 뇌수막염과 고환염
많은 부모님이 아들을 키울 때 볼거리를 특히 조심스러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합병증 때문입니다. 볼거리 바이러스는 침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의 다른 '샘(Gland)' 조직이나 신경계도 좋아합니다.
가장 흔한 합병증은 뇌수막염으로, 고열과 두통, 구토를 유발합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사춘기 이후 남성 환자의 약 20~30%에서 나타나는 '고환염(Orchitis)'입니다. 바이러스가 고환을 공격하면 크기가 몇 배로 붓고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데, 드물게는 고환 위축이 일어나 불임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양쪽 고환이 모두 침범당해 완전히 불임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여성의 경우도 난소염이 올 수 있죠. 즉, 볼거리는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라 전신의 장기를 위협할 수 있는 전신 감염병입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MMR 백신이 있습니다. 생후 12~15개월에 한 번, 만 4~6세에 한 번, 총 두 번의 접종만 잘 챙기면 이 고통스러운 '사각 턱 바이러스'로부터 99% 안전할 수 있습니다.
볼거리가 얼굴을 변형시키는 바이러스라면, 다음에 소개할 녀석은 임산부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가벼운 발진처럼 보이지만, 태아에게는 치명적인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풍진'. 다음 글에서는 '103. 풍진(Rubella): 임산부가 가장 피해야 할 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Virology 101: 바이러스학 개론 (The Basics) > 1-2. 침투와 복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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