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하는 재채기 한 번, 그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침뿐만이 아닙니다. 시속 160km라는 엄청난 속도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물방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들이 수만 마리씩 탑승해 있죠.
인플루엔자가 학교나 사무실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순식간에 퍼지는 이유가 바로 이 '비말(Droplet)' 때문입니다. 오늘은 바이러스가 어떤 경로를 타고 내 몸으로 들어오는지, 그리고 얇디얇은 마스크 한 장이 어떻게 그 수많은 총알을 막아내는 방탄조끼 역할을 하는지 과학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1. 비말(Droplet) vs 에어로졸(Aerosol): 거리두기의 과학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주된 수단은 감염자의 기침이나 재채기, 심지어 대화할 때 튀어나오는 침방울, 즉 '비말'입니다. 이 비말의 크기는 보통 5㎛(마이크로미터) 이상으로, 무게가 있어서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1~2m 이내의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방역 수칙에서 "2m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비말이 닿지 않는 안전거리가 2m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작은 입자인 '에어로졸'은 다릅니다. 수분이 증발해 가벼워진 에어로졸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며 더 멀리 퍼질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인플루엔자는 주로 비말을 통해 전파되지만, 환기가 안 되는 밀폐된 공간에서는 에어로졸 형태로도 감염될 수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감염 위험이 뚝 떨어지는 이유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바이러스 농도를 희석시키기 때문입니다.

2. 보이지 않는 지뢰: 문손잡이와 스마트폰 (접촉 감염)
많은 분이 "나는 마스크 잘 썼는데 왜 걸렸지?"라고 억울해합니다. 범인은 바로 '손'입니다. 감염자가 재채기를 막은 손으로 버스 손잡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만지면, 바이러스는 그곳에 묻어 '지뢰'처럼 다음 사람을 기다립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딱딱한 표면(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위에서 24~48시간까지 생존할 수 있습니다. 무심코 오염된 물건을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코를 파는 순간, 바이러스는 "옳다구나!" 하고 점막을 통해 침투합니다. 이것이 바로 '접촉 감염'입니다. 마스크만큼이나 손 씻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누 거품은 바이러스의 껍질(엔벨로프)을 녹여버리는 가장 강력한 화학 무기니까요.
3. KF94 마스크: 바이러스를 잡는 정전기 그물
그렇다면 마스크는 어떻게 바이러스를 막을까요? 단순히 구멍이 작아서 못 들어오는 걸까요? 아닙니다. 바이러스(약 0.1㎛)는 마스크 섬유 틈(약 10~100㎛)보다 훨씬 작아서 그냥 통과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마법이 바로 '정전기 필터'입니다. KF94 같은 보건용 마스크 안에는 정전기를 띠는 특수 필터가 들어있습니다. 이 필터는 자석이 철가루를 끌어당기듯, 공기 중의 미세한 입자와 바이러스를 '자력'으로 끌어당겨 섬유에 딱 달라붙게 만듭니다. 체로 거르는 것이 아니라 자석으로 잡는 원리죠. 그래서 마스크를 빨아서 쓰거나 습기가 많이 차면 정전기 기능이 사라져 방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인플루엔자 예방의 핵심은 '차단'입니다. 나의 비말이 남에게 튀지 않게 막고(마스크), 남이 남긴 흔적을 내 몸에 들이지 않는 것(손 씻기)이 가장 확실한 방패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바이러스는 틈을 노립니다. 만약 불행하게도 방패가 뚫려 감염되었다면, 그때는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야겠죠. 다음 글에서는 인플루엔자 A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 '055. 치료/백신: 타미플루와 백신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바이러스를 굶겨 죽이는 약과, 우리 몸을 미리 훈련시키는 백신의 놀라운 메커니즘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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