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입술에 물집이 잡히는 1형 헤르페스(HSV-1)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가진 아주 흔한 바이러스였죠. 그런데 이 바이러스에게는 성격이 조금 다른, 그래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를 꺼리는 이란성 쌍둥이 동생이 있습니다.
바로 '단순포진 바이러스 2형(HSV-2)'입니다. 주로 생식기 주변에 물집을 만들기 때문에 성병(STD)으로 분류되기도 하죠. 이 때문에 감염된 분들은 심한 자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도덕성의 척도가 아닙니다. 오늘은 이 바이러스가 도대체 1형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오해와 진실은 무엇인지 솔직하게 파헤쳐 봅니다.
1. 허리 위는 1형, 허리 아래는 2형? (서식지의 차이)
1형과 2형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보면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우리 몸에서 사는 동네가 다릅니다. 쉽게 말해 배꼽을 기준으로 나뉩니다.
1형(HSV-1): 주로 입술 주변이나 얼굴에 서식하며, 삼차신경절에 숨어 있습니다.
2형(HSV-2): 주로 생식기나 엉덩이 주변에 서식하며, 꼬리뼈 근처의 천골신경절(Sacral Ganglion)에 숨어 있습니다.
2형은 주로 성적인 접촉을 통해 전염되므로 성병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구강 성교가 흔해지면서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입에 있던 1형이 상대방의 생식기로 옮겨가거나(1형 생식기 포진), 반대로 2형이 입으로 옮겨가는 교차 감염이 늘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증상이 있을 때는 부위와 상관없이 접촉을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보이지 않는 전파자: 무증상 흘림(Asymptomatic Shedding)
2형 헤르페스가 무서운 점은 '증상이 없을 때도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분이 "물집이 없으니 안전하겠지?"라고 생각하고 관계를 갖다가 파트너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곤 합니다.
바이러스는 평소 신경 속에 숨어 있다가 가끔 피부 표면으로 산책을 나오는데, 이때 물집 같은 증상을 만들지 않고 조용히 바이러스만 뿌리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무증상 흘림'이라고 합니다. 특히 감염 초기 1년 동안은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본인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고, 파트너는 영문도 모른 채 피해자가 되는 원인입니다. 그래서 콘돔 사용이 중요하지만, 콘돔으로 가려지지 않는 부위(허벅지, 음낭 등)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어 100% 예방은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3. 평생 관리하는 '만성 질환'일 뿐입니다
2형 헤르페스 진단을 받으면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며 절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헤르페스는 당뇨나 고혈압처럼 관리 가능한 만성 피부 질환일 뿐입니다.
죽을병도 아니고, 불임이 되는 병도 아닙니다. (단, 출산 시 산도에 물집이 있으면 신생아에게 위험할 수 있어 제왕절개를 권장합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재발해서 따갑고 아프지만, 며칠 약을 먹으면 가라앉습니다. 재발이 너무 잦은 경우에는 항바이러스제를 매일 소량 복용하는 '억제 요법'을 통해 재발률을 획득기적으로 낮추고 파트너 감염 확률도 줄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파트너에게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알리고, 증상이 있을 땐 관계를 피하는 배려입니다.

헤르페스 2형은 분명 귀찮고 까다로운 불청객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알고 관리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건강한 삶도 충분히 지킬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무지에서 오는 공포와 낙인이니까요.
자, 이제 헤르페스 형제들과 작별하고,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여름철의 악동을 만나러 갑니다. 입안, 손, 발에 물집이 생겨 아이를 울게 만드는 '수족구병'. 다음 글에서는 '121. 수족구병(엔테로): 여름철 아이들의 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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